워라밸이란?
‘워라밸’이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영어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에서 온 말이다.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부쩍 많이 들을 수 있는 신조어이다. 최근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최초로 지역별 워라밸 지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시스템이 가져다 주는 혜택은 무척 크다. 생활이 전반적으로 바뀌면서 삶의 질을 돌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빨리 그리고 많이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는 패턴에 젖어 있어서 워라밸이 삶에 녹아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을 항상 원했지만 생황이 그것을 따라주지 못했다. 원인을 항상 급한 마감이나 과도한 업무량 탓을 했었는데 실은 내가 갖고 있는 일과 삶의 가치관이 내 삶을 항상 일에 쫓기게 하고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본질적인 변화를 하게 해준 데에는 명상이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관찰했던 직업관
명상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삶을 어릴 때부터 돌아보니 직업, 일에 대해서 처음으로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아빠를 통해서였다. 1940년대에 태어나서 70~80년대에 30대를 보낸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처럼 우리 아빠도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삶에 일 뿐이었다.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은 밤 11시쯤 이었다. 잠들어 있다가 눈을 비비면서 겨우 일어나 아빠를 안고는 다시 잠들곤 했다. 주말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저녁 시간이 되면 집에 오곤 했다. 아빠가 집에 있을 때는 나와 동생에게 많은 사랑을 주신 걸로 기억했지만 아빠의 삶의 우선순위는 누가 보아도 일, 일과 관련된 인간관계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큰 불만은 없었다. 아빠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했다고 느껴졌다. 그 무렵에 일과 직업에 대한 개념이 나에게 처음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삶을 다 바쳐서 이루어내는 것 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학업에 내 삶을 다 바쳤다. (그렇다고 공부를 무척 잘 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 시절에 미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질 못했다 -_-;;;) 가까운 친구들도 있었고 같이 울고 웃으며 우정을 키워나가는 또래들이 있었지만 분명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사회에서 시작하게 됐을 때도 어린 시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은 직업관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딱히 정해진 퇴근시간 없이 일을 엄청나게 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삶에는 일이나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기는 해도 지금은 일을 우선 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나중에 돌보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가족들과 식사 한번 하는게 그렇게 어렵고 친구들과 식사 한번 하려고 해도 학원 빠지는걸 참 아쉬워했다. 참 신기하게도 내 머리 속에 있는 나라는 사람은 친구들, 동료들에게 내 시간이나 정성을 많이 쓰는 사람인데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그냥 하염없이 나이가 들면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다고 나이탓만 하게 되었다. 혼자서는 보기 힘든 삶의 사각지대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무척 놀라웠던 점은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자동차 미러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처럼 명상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이 내 삶에 분명히 있었다.
명상으로 발견한 사각지대는 내가 굉장히 불합리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삶에서 일이 너무 중요하다 보니 업무량이 정말 많았다. 쉬는 시간, 여가 시간 등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업무량을 조정해서 적당히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에서도 나는 무조건적으로 내 기준을 쫓아서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했고 그 뒤에는 항상 지치고 힘들고 번아웃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회복이 되면 좀 바꿔야 되는데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조금은 변하지만 여전히 큰 틀은 무리하고 번아웃되고 무리하고 번아웃되는 되풀이였다. 일에 눈이 가려져서 가족들과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내 삶에 그들의 존재가치를 실제보다 너무 낮게 자리매김했었다. 내가 그들을 일과 관련된 사람들 반만큼도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그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내 일이 최우선순위였기 때문에 일, 일 관련된 인간관계 등등 다음에나 내가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 느낄 수 있었다. 내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 것인지 보이게 되었다. 그 전에는 내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시간을 꽤 많이 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실은 아주 기본적인 것을 하면서 내가 그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당신에게 시간을 쓰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자신을 주변에 시간과 정성을 많이 쏟는 사람으로 스스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명상을 하면서 어린 시절 갖게 된 직업관부터 하나씩 빼기를 했다. 그 시절에 대부분의 아빠들은 엄청나게 일을 많이 했다. 어린 시절에 아빠를 보면서 갖게 되는 직업에 대한 개념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을텐데 나는 무의식 중으로 일과 직업에 대한 개념이 아빠의 것과 비슷하게 형성이 되었던 거다. 그런 것들을 빼기 방법으로 하나씩 버리다 보니 내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기준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걸 알게됐다. 나도 물론 여가생활도 즐기고 싶고 혼자서 업무량을 엄청나게 소화하는 에너지를 팀워크에 더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속 깊이 나만의 기준이 나도 모르게 크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그 기준이 항상 내 결정을 좌지우지했었다. 또한 자신의 기준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사람을 경직되게 하는 것인지를 빼기를 하고 나니까 알게 되었다. 근본적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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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겉핥기식 글쓰기보다 실체와 본질을 잘 담고 싶다. 나의 일상, 직장, 가족, 마음수련… 나는 진실을 잘 담고 있을까? 아니면 글에서조차 나의 실체를 감추고 있는 걸까? 가장 드러내보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고 펜이 가는 대로… 나의 밝음과 어둠을 모두 적고 싶다. Archives
Jun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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