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혼여성이다. 그래서 명절 때 흔히 겪는 남편 쪽과 부인 쪽 가족 사이의 갈등을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유교와 가부장제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가까이에 있는 내 엄마의 시집살이를 보면서 어렸지만 같은 여자로서 저것이 결혼 후 나의 미래인가?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있다. 아니 그것보다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명절은 나에게 언제나 힘이 빠지고 우울한 기간이었다. 명상을 하기 전에는 말이다. 각자는 안 이상한 사람들인데 모이면 다들 이상해진다 집안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친가댁 어른들도 엄마 아빠도 모두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안 이상한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면 참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천주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엄마는 아침 일찍 주방으로 출근해서 전 붙이고 잡채 하고 갈비하고 과일 깎고 설겆이하고 밤에 야식으로 먹을 간식들 식탁이랑 냉장고 안에 준비해 두는 것까지 해서 밤 10시에 방에 왔던 거 같다. 하루는 엄마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그냥 이 집에 일하러 온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너무 어려서 엄마를 도와주지도 못했지만 중학생이 되어서 엄마 도와주면서 맘이 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 시간에 아빠는 정말 쉴 거 다 쉬고 가족들이랑 얘기하고 본인 할 일까지 하고 휴가 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엄마를 그렇게 반겨 주지도 않았고 가끔씩 엄마에게 잔소리 같은 모진 소리도 했는데 1대 다수로 엄마에게 한마디씩 하고 아빠는 엄마를 변호해 주지 않았었다. 너무 불공평해서 명절 때면 항상 속이 답답했다. 집에 가자고 하면 아빠는 길이 막힌다고 하면서 항상 명절 마지막 날 오후 늦게까지 할머니 댁에 머물렀다. 아빠만의 명절이었고 엄마, 나, 내 동생은 아빠 쉬러 가게 해주는 들러리 같았다. 일하니까, 돈 버니까, 라는 말로 아빠를 변호해 주기에는 1년에 2~3번씩 꼬박꼬박 3~4일씩 겪는 시간이 너무 힘이 들었다. 하세요. 그렇게 명절을 몇 년 겪고 나니까 한 12살 되니까 명절이 너무너무 싫어졌다. 엄마랑 할머니랑 싸우던 모습, 아빠가 혼자서 편하게 즐기던 모습, 그런 장면들이 모여서 명절이라는 느낌이 불공평하고 답답한 느낌이었다. 휴일인데 제대로 쉬지 못하는 기분 나쁜 휴일. 20대가 되니까 나는 구정이나 추석 전이 되면 항상 아팠다. 그래서 20대 중반부터는 명절 때에 더 이상 할머니 댁에 가지 않았다. 명상을 시작한 후 – 달라진 명절 그러나 명상을 하게 되었다. 마음수련이라는 명상인데 마음빼기 방법으로 살아오면서 쌓아온 마음을 빼기하는 명상이다. 마음빼기를 하려면 삶을 되돌아본다. 되돌아보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가 한 일을 되돌아보고 일기 또는 일지를 쓰면서 성장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던 나는 되돌아 보기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데 명절 때 할머니 댁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많이 떠올랐다. 그것도 마치 며칠 전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엄마랑 할머니랑 티격태격 했던거, 엄마가 순딩이라서 할말도 제대로 못 했던거, 내가 아빠한테 이렇게 친가댁에만 있고 외갓댁에는 안 가냐고 하다가 아빠가 대답도 안하고 노려보면서 무시했던거,… 하나하나 버리면서 이 에피소드들이 어린 시절 나에게 충격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하는 말로 7살이 틀이 엄청 세다고 한다. 5~7세 전후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바름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 하는 시기하고 한다. 되돌아 보는데 나도 그런 시기를 겪었었다. 세상이 굉장히 정의로워야 하고 어른들은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기준이 나름대로 있었는데 할머니 댁에서 보는 장면은 내 기준과는 많이 달라서 충격을 받았었다. 가족은 명절에 다 모여야 한다고 해서 명절에 모였는데 엄마는 가족이 아니라 일꾼처럼 일만 하고 어린 나랑 동생이 놀만한 곳이 없고 위험하니까 집에만 있으라고 하고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야 하는데 왜 고모들은 오지 않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것 투성이라 혼란스러운데 힘든 엄마 모습을 보면서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나와 동일시 하면서 내가 마치 시집살이를 겪는 듯 했다. 너무 예민하긴 했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솔직한 심정이었다. 너무나 오래전 일인데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내가 꽉 쥐고 있었던 마음들이었다. 명상하면서 그런 것들은 빼기 하니까 마음이 굉장히 후련해졌다. 그리고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부당한 일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했다. 그리고 예민한데도 말도 한마디 못하고 그냥 불평만 하는 타입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어짜피 안 고쳐질텐데 뭐하러 얘기하나… 이런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깊었다. 그 패배주의는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명상을 한 후에는 어린 시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게 됐던 굵직한 에피소드들, 은연 중에 느꼈던 스트레스나 충격 받았던 일들을 버리고 나니까 더 이상 부당한 일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눈감고 귀막고 사는 사람처럼 된 게 아니라 부당한 일이 있으면 뭐랄까 예전처럼 흥분하거나 “항상 그렇지, 뭐” 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인을 보려고 하고 내 선에서 시정할 것들은 시정하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꼭 이야기를 하게 됐다. 예전에는 너무 흥분 상태이니까 말도 꺼낼 수 없었는데 이제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보자 라는 마음이 우선 드니까 우선 내가 편하다. 그리고 내 의견을 듣는 상대방도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못 고치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마음이 차분한 상태에서 의견을 제시했을 때는 상대가 대부분 수용을 하는 걸 경험하는 건 사실이다). 꾸준히 하면서 느끼게 된 마음수련의 실체는 참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가져다 준다는 점이다.
명절이면 느끼던 갑갑한 마음도 이제는 별로 그렇지도 않다. 한번은 명상 메인센터에 갔다가 할머니 댁에 일부러 들린 적이 있다. 명절도 아니고 생신도 아니고 한데 그냥 들려봤다. 그리고 할머니랑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명상하고서 사람들 이야기도 잘 듣게 되고 공감 능력도 이전보다 좋아져서 ^^;;; 그날 할머니 이야기를 실컷 들어드렸다. 마음을 열고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할머니가 이해도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사랑하던 엄마를 해꼬지 하던 할머니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서 난 한번도 할머니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도 그 시절에 가부장제에서 살면서 똑같이 시집살이 겪으면서 살던 분이라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명상, 현재 행복하기 그렇게 명상을 하고 나니 내 마음에 맺혀 있던 감정들이 풀리고 나는 더 이상 명절이 되어도 아프거나 속상해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 댁에도 갔었다. 가족마다 다 아픔이 있고 불편한 사연들이 있는 거니까 예민한 사람들은 거기에 너무 함몰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수련의 실체는 자신이 겪었던 삶이 현재에 더 이상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해 주기 때문에 참 좋다. 현재 행복하기, 그것이 가능해져서 참 좋다. |
Author겉핥기식 글쓰기보다 실체와 본질을 잘 담고 싶다. 나의 일상, 직장, 가족, 마음수련… 나는 진실을 잘 담고 있을까? 아니면 글에서조차 나의 실체를 감추고 있는 걸까? 가장 드러내보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고 펜이 가는 대로… 나의 밝음과 어둠을 모두 적고 싶다. Archives
Jun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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